
잠깐 아래 문제를 생각해 보자.
문제 1: 다음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무조건 90만원을 받거나, 90% 확률로 100만원을 받거나.
문제 2: 다음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무조건 90만원을 잃거나, 90% 확률로 100만원을 잃거나
각 문제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가? 조사 결과 문제 1에서 대다수는 무조건 90만원을 받는 안전한 선택을 한다. 그리고 문제 2에서는 대다수가 90% 확률로 100만원을 잃는 도박을 택한다. 사실 산술적으로는 문제 1의 두 예시 모두 기댓값은 +90만원으로 동일하고, 문제 2의 경우는 모두 -90만원으로 역시 동일하다. 따라서 기계적 합리성을 가진 존재라면 각 문제가 제시하는 두 선택지에 차이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 1에서는 안전한 위험회피 선택했고, 문제 2에서는 대부분 도박을 하는 선택을 했다. 사람들은 왜, 그리고 언제 이런 선택을 할까?
위 예시는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나오는 수많은 예시들 중 하나다. <생각에 관한 생각>은 위의 예시처럼, 산술적 합리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비합리적인" 선택들을 꼼꼼히 분석해 나가는 책이다. 저자는 인간의 판단과 결정이 우리가 스스로 기대하고 예상하는 합리적 사고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합리적 사고(책의 표현에 따르면 시스템 2)와 직관적인 판단(시스템 1)을 구별하여 설명함으로써, 일상에서의 빠른 판단과 결정은 사실 어림짐작, 과신, 편향의 영향을 받는 시스템 1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저자 대니엘 카너먼은 심리학자이면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인간 인지에서 나타나는 여러 편향과, 결정 과정에서 이러한 편향이 작용하는 영향을 연구했고 이를 경제학과 융합하여 '합리적 인간'을 행위자로 간주하던 전통적 경제학에 도전해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행동경제학' 분야를 창시했다고 평가받는다. <생각에 관한 생각>은 그가 교수 은퇴 후 그의 연구를 집대성하여 설명한 책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은 1부 <두 시스템>에서 우리의 판단과 선택에 관여하는 두 가지 시스템을 구분해서 설명하며 시작한다. 책의 표현대로라면 시스템 1, 시스템 2, 일상적인 표현으로 바꿔보자면 직관과 합리적 추론으로 나뉘는 우리의 사고 체계를 보여주고, 우리가 스스로 자랑하던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기대와 달리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 1의 직관이 우리 일상의 많은 결정에 영향을 미침을 보여준다.
이어서 2부 <어림짐작과 편향>, 3부 <과신>에서는 시스템 1(직관)을 좀 더 파헤치며 통계적 결론에서 벗어나는 우리의 결정, 스스로에 대한 과신, 불확실성에 대한 회피 등 우리 정신의 당혹스러운 한계를 보여준다.
4부 <선택>에서는 기존 경제학의 인간 사고에 대한 가정을 살펴보고, 1~3부에서 논의한 인간의 직관이 경제적 선택에 작용하여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데, 이 내용을 정리한 '전망이론'과 '프레이밍 효과'는 저자의 주요 활동 영역인 행동경제학의 핵심이 된다.
5부 <두 자아>는 앞선 내용들과는 다소 독립적으로 느껴지는 파트이다. 마치 인간의 사고를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나눴던 것처럼, 카너먼은 다시금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의 본질을 그 순간을 경험하는 '경험하는 자아'와 지나간 인생을 이야기로서 기억하는 '기억하는 자아'로 나눠 살펴본다. 두 자아는 때때로 느끼고 인식하는 것이 다르며 우리는 일반적으로 기억하는 자아를 '나'라고 생각하지만, 카너먼은 순간순간의 경험하는 자아에도 주의를 기울일 것을 제안한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구분, 합리적 경제주체 '이콘 Econ'과 감정과 짐작에 영향을 받는 경제주체인 '인간 Human', 그리고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까지. <생각에 관한 생각>은 인간 인지의 특성을 비유적인 두 요소로 나눠 설명하며 우리의 사고와 인지를 더 깊이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 여러 심리학 실험과 예시들을 풍부하게 제시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많은 내용에도 저자의 주장은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각 장의 끝에는 각 장의 내용을 바탕으로 제시되는 문구들도 있는데, 역시 글의 내용을 다시 되새기게 하는 똑똑한 장치다. 책에서 '경험하고 보는 것이 이론으로서 제시되는 것보다 설득력이 강하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런 학문적 지식을 저자는 자신의 책에서 직접 적용한 셈이다.
다양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책이지만, 다 읽고 개인적으로 크게 다가온 점은 경제적 선택과 투자 의사결정에서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이전부터 투자를 하면서 때때로 내가 내리는 비이성적인 판단들을 되새기며 후회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책을 추천받아 읽으며 스스로의 선택에 내 감정과 직관이 많이 작용해 왔음을 알았다. 감정과 직관은 때때로 투자에 도움이 되지만, 적절하게 감시하고 피드백하지 않으면 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내 선택에 감정과 직관이 얼마나 작용하는지 돌이켜볼 수 있는 툴을 제공하는 점에서, 그리고 내 선택에 대한 과신을 줄이고 다시 한번 돌이켜 검토해 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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